제목은 거창하지만,
그냥 오늘 도서관에 오면서 있었던 일이다.

오는 길에 1톤 트럭(보통 포터..라고 하죠. ^^;)에서 신발을 팔고 있었다.

'스리퍼 무조건 오천원'

이라고 적혀 있었다.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긴 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영어로 'slipper'
이를 일어로 쓰면 'スリッパ'
국어 사전에는 '슬리퍼'라고 돼 있었는데, 뜻은 아래와 같다.
뜻 : (명사) 실내에서 신는 신. 뒤축이 없이 발끝만 꿰게 되어 있다.

한 마디로, 실내화.

50대 이상 어르신들은 그냥 편하게 '쓰레빠'라고도 한다. 하긴 나도 어릴 때 자주 썼던 말이긴 하지만. ^^

이제 장사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자. 아니, 꼭 그렇지 않더라도 그냥 우리 일상에서 생각해 봐도 좋을 것 같다.

(예문)
1. "오늘 슬리퍼 하나 사려구"
2. "오늘 쓰레빠 하나 사려구"
3. "오늘 스릿빠 하나 사려구"
4. "오늘 slipper[슬립퍼 정도로 발음할까요?] 하나 사려구"
5. "오늘 실내화 하나 사려구"

자, 뭐가 가장 없어 보이고 있어 보이는가?

1번, 4번, 5번 정도는 친구든 어른이든 무난하게 써먹을 수 있을 것 같다.
2번은 친구나 혹은 어린 애들이랑 함께 쓰긴 괜찮을 법하지만 어른(이런 상황이면 부모님이라든가)들 앞에선 쓰기 좀 그렇지 않을까?
3번은 써놓긴 했지만 이렇게 쓸 사람은 그다지 없을 것 같다.

5번의 경우 '실내화'가 자칫 학교에서, 혹은 회사에서 신는 실내화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으니 상황에 따라 오해할 수도 있을 법하다.

4번은 괜히 '아는 척'을 한다고 해야할지, '유식한 척'을 한다고 해야할지...그런 오해를 살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
좀 영어를 쓰면 '아는 척'을 한다거나 '유식한 척'을 한다고 오해할 수도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다른 말로, '좀 아는 사람' 혹은 '유식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오늘 본 말이 '스리퍼'였기 때문에 이것만 예를 들었지만, 광고가 가장 대표적인 것 같다. 우선 영어로 해놔야 좀 그럴듯해 보이는 건.

이건 누굴 탓하거나 할 문제는 아니다. 그저 우리말의 현재 위치이기 때문에.

내가 죽기 전에 한글이 영어보다 있어보이는 말로 생각할 날이 올까?

내 바람이야 왔으면 좋겠지만 말이다.

각종 프로그래밍 언어들을 한글로 실행하거나 운영체제가 한글을 기반으로 만들어진다거나 세계 표준으로 채택된다거나...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물론 한글이 영어에 비해 용량 등의 문제점이 있다는 것도 알고는 있다.)

'스리퍼'를 통해 우리말에 대한 짧은 생각을 적어 봤다. ^^

Posted by 하루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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